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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의 다큐멘터리: 권하윤, 〈489년〉

민지영

  권하윤(서울, 1981~)은 한국과 프랑스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영화감독이자 미디어 아티스트이다. 작가는 3D 애니메이션과 VR영상으로 타인의 경험과 기억을 이미지화 한다. 관객이 관람하는 이미지를 넘어서 체험할 수 있는 것으로 물화시키는 그의 작업은 개인의 서사가 어떻게 이를 경험한 적 없는 이들에게까지 생생히 닿을 수 있는지 알게 한다. 

  우리는 사건을 카메라 렌즈와 스크린을 통해 본다. 사건을 현장을 담아내는 것이 전통적인 다큐멘터리의 역할이었다면, 사건을 겪은 이들의 이야기는 어떻게 그려야 하는 것일까. 경험한 이들의 이야기를 카메라가 아닌 가상현실이 영상화하여도 그것을 다큐멘터리라고 칭할 수 있을까? 

  권하윤의 작업이 이에 대한 대답이 될 수 있다. 작가는 개인들의 기억 속에 있는 이야기를 가상의 공간 안에 구현한다. 기억은 주관적이며, 사실과는 상반되는 위치에 자리하는 요소이다. 그러나 작가는 기억의 약점에 대해서 아랑곳하지 않는다. 기억이 작가에 의해 영상으로 재현된다고 해서, 객관적인 무엇이 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기억의 한 지점에서 이를 증언의 영역으로 불러온다. 권하윤은 개인들의 이야기를 통해 가상현실을 구현하고, 결국 이것이 렌즈로 담은 실제와 다를 바 없음을 상기시킨다. 


권하윤, 〈489년〉, 2015-2016
  
  다큐멘터리의 수많은 역사적, 형식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다큐멘터리’는 진실과 현실, 객관성 등의 개념을 대표하는 고유명사처럼 명명된다. 그러나 있는 그대로를 촬영해서 현실의 문제를 짚어내는 의미의 다큐멘터리는 이미 ‘전통적’이거나 혹은 ‘이상적’인 어떤 것이 되어버렸다. 
  오랫동안 렌즈를 통해 보는 세상은 객관적인 증거로서 작동 가능했다. 다큐멘터리의 전통적인 권위는 이미지의 ‘사실성’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렌즈에 포착된 이미지가 실제이며, 이것이 이미지의 ‘비-허구성’을 증언하는 도구가 되는 시대는 지났다. 이상주의적 다큐멘터리의 해체는 오직 렌즈에 담긴 이미지만이 실제를 구현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에 저항하는 기원을 열어주었다. 허구의 장면이 사실을 말하게 되는 순간, 새로운 장르의 다큐멘터리가 가능해진다. 그것이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이다.
 최현주는 이에 대해 “다큐멘터리의 기본 토대라고 할 수 있는 ‘사실성’과 그 대척점에 있는 ‘허구성’이 모순적으로 결합한 형태의 다큐멘터리가 등장했다”는 점을 언급하며, 이때, 다큐멘터리가 ‘허구적 표현 형식’과 결합한 것을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라고 정의한다.1) 이는 ‘허구적 표현 형식’으로 구현된 세계 또한 진실을 말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된다. 물리적 기록은 자신이 가진 진실성의 권위에 대해 도전을 받게 되었고, 이는 권하윤의 작업 방식의 전환과 궤를 같이 한다. 
  이상주의적 다큐멘터리 프레임 안의 세상은 물리적 공간을 차지한 것만을 감지하며, 벽 너머를 볼 수 없었고 비선형적인 시간을 담아낼 수도 없었다. 그러나 애니메이션이 만든 가상의 세상은 모든 것을 가능케 한다. 다큐멘터리는 더 이상 ‘사실의 재현’에만 매달리지 않는다. 


권하윤, 〈489년〉, 2015-2016
  
  <489년>(489 Years, 2016)에 재현된 기억은 어떠한가. 작가는 <489년>에서 국가 권력에 의해, 존재하지만 없는 곳으로 여겨야하는 곳을 상상의 시각에서 접근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권하윤, 〈489년〉, 2015-2016

  작품의 제목은 한반도의 DMZ(비무장지대) 내의 지뢰를 모두 제거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다. 전직 군인 ‘김’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그의 개인적인 기억과 동행하게 된다. 사진으로 남아 있는 그의 기억을 쫓아가면 이미지는 흩어지고, 어느새 우리는 사진 안에 들어와 있다. 이 세계에서는 말과 이미지가 동시 속도로 재현된다. 같은 속도의 말과 이미지는 무엇이 먼저인지 알 수 없게 되며, 말하는 것이 보이는 것인지 보는 것을 말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권하윤의 세계에서 말과 이미지는 같은 시간을 공유한다. 

  작가는 기억을 이미지로 재현하는 과정을 통해 개인의 기억을 공유하며, 다시쓰기와 덧쓰기를 통해 보지 못한 것들을 재구성한다. 실제 위에 다시, 그리고 덧그린 작가의 이미지는 상상의 산물이지만 현실을 반영하면서 보다 더욱 안정적으로 현실에 안착한다. 


1) 최현주. 『다큐멘터리와 사실의 재현성』. 파주: 한울 아카데미, 2018, p.181.

민지영 ji0min@mj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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